모차르트 론도 K. 511
날씨가 흐린 날, 모차르트 론도 K.511 만큼 잘 어울리는 곡이 또 있을까. 예전에, 랜덤으로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무슨 곡이 이렇게 좋지?' 라며 직접 확인하니, 모차르트의 이 곡이였다.
론도 K.511
비가 오면, 스산한 분위기가 따라오는데, 그 스산한 분위기에 가장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 혹은, 외로움에 사무쳐 쓸쓸함이 찾아올 때, 그 쓸쓸함과 가장 어울리는 음악. 참 타이밍도 절묘하지. 오늘의 도쿄날씨는 흐림. 연주장으로 가는 내내, 피부로 느꼈던 스산함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 엘리소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해주셨다. 모차르트가 이 곡을 썼을 때, 어느정도의 슬픔, 우울함을 지녔기에 이 곡이 나왔겠지. 음악은, 본인의 투영이니까. 작곡가가 느꼈던 슬픔을, 200년 후에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457
연주 중에 갑자기 베토벤 비창 소나타 들리길래, 오잉? 이랬는데 베토벤이 비창 소나타를 작곡할 때 이 곡 영향 받았다고 한다. 아 정말, 이런거 너무 신기해. 이런거 반칙아닐까? 모차르트랑 베토벤은 콜라보를 한적이 없지만, 후세에 듣는 사람들은(나같은 사람들), 그 짧은 3초에 의미부여 미친듯이 한다고. 모차르트, 이렇게 순수한 사람을 누가 싫어하리. 모차르트는 나이,성별,국적 불문 좋아할 수 밖에 없다니까? 깡총깡총 토끼가 뛰듯이,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손들은, 깡총깡총 움직여야 모차르트의 순수함이 표현된다. 엘리소가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걸 보면서, 순수함은 나이를 불문하는 구나라고 느꼈다. 손에 힘을 빼고, 어린 아이처럼, 아파트 상가 피아노 학원에서 열심히 귀엽게 치는 토깽이 같은 아이들처럼, 엘리소도 그렇게 순수하게 모차르트를 연주했다. 손에 많은 힘이 들어간 사람은, 모차르트를 순수하게 연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예술이란, 긴 시련을 참아 만들어지는, 피아니스트가 일생에 걸쳐 추구하는 것. 콩쿠르는 그저 한때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음악가는 음악 그 자체에 몸을 바쳐야 '초월한 예술가'가 된다.
(엘리소 비르살라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았던
쇼팽 발라드 2번
인간은 탐미적 존재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 어쩔 수 없어. 아름다운 것에 매혹당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쇼팽이 그래. 쇼팽의 음악은, 아.름.다.워. 음악이 아름답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쇼팽의 음악일까해. 음악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쩌면 시각적으로 표현된 것에만 쓸 수 있는 형용사가 아닌가. 근데, 그것을 쇼팽이 무너뜨려. 시각적 표현에만 쓸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이라는 형용사를, '음악'이라는 청각적 표현에 갔다 붙여. 희한하게도, 연주홀에서, 쇼팽의 곡을 들으면, 눈시울이 붉혀지는데, 그게 아마, 아름다움을 귀로 느껴서가 아닐까? 쇼팽은 근데, 우리에게 반전을 던져. '아름다움'에서 끝나면, 어쩌면 음악도, 순간의 아름다움, 한철의 벚꽃처럼, 금세 사라져버리는 음악이 되겠지만, 쇼팽은 아름다움에 '격렬함'을 더해. 그래서 '한철'에 불과한 벚꽃같은 음악이 아니야. 지금까지, 그리고 먼 미래까지 영향을 주는 '영원'한 음악이지. 발라드 2번이 끝나갈때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그 연주가, 쇼팽 음악의 아름다움을 영속시켜.
난 그래서 쇼팽이 정말 좋아.
연말엔
역시
모차르트와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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